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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얘기들이 밥상머리에서 이뤄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런 게 없잖아요. 된장찌개 한 그릇 안에 숟가락 다섯 개가 들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 울컥했습니다."

송해성(49) 감독이 영화 '고령화가족'으로 돌아왔다. '무적자'(2010) 이후 3년 만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파이란'(2001) 등 가슴 아픈 멜로 영화로 유명한 그가 '콩가루 집안'라고 할 만한 독특한 가족 얘기로 돌아온 것은 적잖이 의외다.

2일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천명관 작가의 원작 소설에 있는 가족 이야기가 가슴이 헛헛했던 때의 그에게 깊이 와 닿았다고 했다.

"책을 읽었을 때 되게 좋았던 게 '없는 사람들'의 얘기라 좋았어요. 마이너리티(비주류)의 얘기들, 삶의 모습들을 영화로 해놓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더라고요. 특히 '오인모'(박해일 분)라는 흥행에 실패한 감독의 얘기가 와닿았어요. 실제로 충무로에 흥행만 하는 감독은 거의 없거든요. 항상 실패를 전제로 깔고 한 번 실패하면 그 부담에서 헤어나오기 힘든데, 그럴 때 누군가 계속 나한테 '잘 할 수 있어'라며 힘을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존재는 바로 가족이 아닐까 싶었죠."



서로 욕하고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함께 부대끼고 절망 속에서 마지막 보루가 돼주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가 꼭 그리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밥상을 펴놓고 모두 옹기종기 앉아 먹는 모습을 찍으면서 이게 우리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닌가 했어요. 서로 싸우고 난리를 부려도 서로서로 챙겨주는 지점들이 있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꼭 혈연이 아니어도 한 집에서 밥을 먹으며 뒤섞이는 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고요."

시나리오를 처음 완성한 것은 재작년이지만, 최근 상업영화의 비슷비슷한 틀에서 조금 벗어난 얘기라 투자가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 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배우 박해일이라고 했다.

"2011년 여름에 촬영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계속 미뤄지면서 이야기를 좀 더 가볍게 고치고 있었죠. 그렇게 1년 정도 힘들어하고 있을 때 이 영화 속의 엄마처럼 저에게 전화해준 사람이 박해일이에요. 작년 7월에 전화가 와서 만났더니 '고령화가족'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윤)제문이도 불러서 같이 술을 마시면서 '그럼 너희 둘이 해라'라고 했죠. 박해일이 절 구원했어요(웃음). 이 배우들은 '고령화가족'이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요즘 영화에 이런 가족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더 띄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배우들에게 빚지면서 찍은 영화예요."







박해일-윤제문-공효진-윤여정의 조합으로 영화는 각각의 캐릭터가 빛나는 영화가 됐다. 그는 이 뛰어난 배우들의 조합을 온갖 영웅들을 모아놓은 영화 '어벤져스'에 빗대 "로-버짓(low-budget; 저예산) '어벤져스'"라고 표현했다.

"웃는 영화를 찍자는 철학으로 시작했어요. 소진하는 영화를 찍을 게 아니라 서로 다 유쾌한 영화를 찍자고 마음먹었죠. 한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찍는 마스터숏은 아예 안 찍었어요. 그러다보니 배우들이 그 상황에 더 집중해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그렇게 촬영시간이 줄어드니까 모여서 얘기하고 교감할 수 있는 여유가 늘었고 촬영할 때 집중도는 더 높아졌죠. 유난히들 서로 잘 맞았고요. 6편의 영화를 찍어온 중에 이 영화를 찍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할 만큼 최고의 만족도로 완성됐다고 느낍니다. 이 배우들의 연기를 못 보는 건 참으로 아깝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약칭 우행시)에 이어 다시 소설이 원작이다. 두 번 다 우연히 '꽂혔고' 매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했다.







"장편소설은 많은 사적인 얘기들이 끼어 있는데, 거기에 몰입하는 독자들이 많거든요. '우행시' 때도 그 소설을 본 독자들이 좋아한 부분은 남자주인공이 일기 형식으로 쓴 챕터들이었어요. 촬영해보니 정작 진짜 주인공들이 안 보이더라고요. 아깝지만 그 부분을 다 들어냈어요. '고령화가족'에서도 마찬가지였죠. 1만5천부가 나간 책이거든요. 독자들 입장에서는 박해일과 윤제문이 소설 캐릭터에 안 맞는다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너무 연결짓지 않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인모'가 닭죽 먹을 때 '한모'(윤제문)가 김치를 찢어 던져주는 장면은 둘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새로 넣은 건데, 배우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새로운 재미를 느껴줬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결말도 소설과는 많이 달라졌다.

"소설 자체가 워낙 장르 혼종적이었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영화화하기는 어려웠죠. 전체 분위기를 더 밝고 가볍게 가다 보니 결말도 해피엔딩이 됐고요. 그래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엄마한테 전화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잘 전달된 거라고 봅니다. 영화감독이 가진 기본 책무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느낀 게 각자 삶의 자극으로 올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령화가족'은 관객에게 두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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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5-03 13: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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