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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주)연후알루미늄 김진선 대표 - 경기도 (주)연후알루미늄 김진선 대표
  • 기사등록 2013-04-19 20:22:41
  • 기사수정 2013-04-19 20: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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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시장 이인재)는 면적 672.64 ㎢로 서울과 개성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996 3 1일 파주군에서 파주시로 승격됐다. 인구는 4028백명(외국인 7

9백명)이고 행정구역은 4 9 7 382통리이다. 인구밀도 398/

(2006년 기준). 넓이는 서울시와 안양시를 합한 크기이며 임진강과 한강하류를 끼고 있고, 관서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었으나 현재는 북부지역에 군사 분계선이 지나며 임진각, 판문점 등이 있다. 2013년 예산규모는 7412억원이고 그중 일반회계가 5964억원이고 특별회계가 1447억원이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축현리 55-18 연후알루미늄(대표 김진선(38)) 30대 여성경영인이 창업 2년 만에 공장도 없이 년 매출 20억원을 올려주목받는 기업이다. 이 업체는 알루미늄 원자재 빌레트를 압출 후 가공해서 거래처가 원하는 형상대로 만들어 완제품업체에 납품하는 일을한다. 예로 들어 이 회사가 알루미늄 액자테두리를 만들어주면 액자업체가 그 액자테두리를 이용해 액자를 만든다.

 

이 회사는 매출액 90%를 원자재가 차지하는데다가 개인사업자로 두면 세금이 많아 작년 10월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직원은 김 대표 포함해5명이고 공장규모는 대지 1백평, 건물 60평이다. 보유 장비로는 디지털정밀절단기, 45도 각을 내는 각()

절단기, 네 구멍을 동시에 뚫을 수있는 축 드릴, 탭 및 홀 가공기 3대등이고, 1, 3.5톤 프레스기를 곧들여온다. 김 대표가 올 가을쯤 시가1~15천만원 하는 CNC를 도입하게 되면 2년 후에는 파주에서 가장 훌륭한 시설을 갖춘 가공공장이 된다. 파주지역에는 알루미늄만 가공하는 업체가 없다. 전문 가공공장이 2개 정도 있긴 하나 40~50대 영업사원 출신의 경영자들이 운영하고있다.

 

김 대표는 기업경영에 있어 무엇보다 생산성 향상 및 종업원 안전에최고 역점을 둔다. 새 장비는 작업자가 힘든 일을 반복하지 않고 덜 다치게 하기 위해 투자한 것이다. 김 대표가 이 업계에 뛰어든 2000~2005년만 해도 여성 영업사원이라는 것에 대해 모두가 신기해 했다.

 

여자라서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일을 배웠다고 한다. 반면 여성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때도있어 동종업계 직원들이 라이벌의식보다는 친한 지인처럼 대해준다. 파주지역에는 동종업체가 적은데다가 최근 공단이 많이들어서는 바람에 일거리는 걱정 않는다.

김 대표가 이 계통에 뛰어든 것은 2005 5월 압출회사인()알루멕스에 경리사원으로 입사하고부터이다. 당시 회사형편은 사장과 경리 등 2~3명이 전부여서 직원들이 다른 업무도 해야 했다.

 

김 대표도 몇 년 후 품질관리, 빌레트 구매, 직원관리, 영업관리 등 일체를 맡아하는 관리과장이 되면서 경영참여도 하게 됐다. 귀찮고 어려운 일이라도 밤을 새서라도 마무리하는 성격이라 거래처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알루멕스도 이제는 직원25명을 둔 자동화된 회사로 발전했다.

 

김 대표는 35살 때인 2010 5월까지 영업부장으로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 업무를 총괄관리 했다. 김 대표보다도 아래직급직원들 대부분이 한참 나이 많은 연장자들이었지만“큰오빠”“작은오빠”라고 호칭하며 리드해 갔다.

 

지금 ()연후알루미늄에서 절단을 맡는 50대 과장도 김 대표를 도와주려고 그 회사를 그만두고 따라온 사람이다. 김 대표는 ()알루멕스에 경리사원으로 들어갔지만 안 다뤄 본 분야가 없었고 또 그것이 지금까지 큰 자산이 됐다고 한다.

 

김 대표의 ()연후알루미늄은 압출성향을 잘 알기에 불량 원자재가 와도 거래처에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물어보고 최대한용도에 맞게 만들어주기에 상대방은 크게 만족한다. 기술력에서 자신이 있기에 경쟁업체가 꺼리는 까다로운 제품을 우선적으로 취급한다. 또 압출공장을 하는 김 대표 이모부가 지원해주기에 공장 없이도 공장도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어 가격경쟁에서도 앞선다. 가공공장만 갖고 있는 김 대표가 압출까지 공장도가격으로 할 수 있으니 이윤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김 대표는 효율적인 생산 및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고가장비인 CNC 혹은 자동프레스(시가 5천만원 이상)를 주저하지 않고 도입했다. 요즘은 작업자 손이 기계에 들어가기만 해도 센서가자동적으로 작업 중단을 시켜줄 정도로 발달했기에 직원들이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가공공장이 영세하기에 포장이 열악한데 연후알루미늄은 항상 포장을 깔끔하게해 제품을 내놓는다.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포장도 깔끔해야 운반하기 좋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을 절단하고 가공하다보면 찌꺼기(이바리 혹은 칩)가 발생하면서 흠집이 생기는 수가 있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일일이 개별포장을 한다. 이렇게 고객만족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쓰니 거래처 확보가 어려운 이 업계에서 기존 거래처가 신규거래처를 추천해준다. 김 대표는 거래할 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의물건은 수주하지만 영역 이외의 것은 어느 회사에 가면 더 싸고좋은 제품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줘 더욱 신뢰를 받는다.

 

거래처를 돈버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을 거래처사장이라고 생각하고 개발팀과 상의해서 필요없는 공정 생략 혹은 개선방안을 제시해 흡족하게 만든다. 이는 김 대표가 전 공정을 꿰뚫고 있기에 가능했고 영업사원 출신의 경영자보다 앞서가는 요인이 된다. 애초부터 만들기 불가능한 형상을 주문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대안을 제시해 가급적이면 거래처 요구사항이 관철되도록 애쓴다. 영업할 때 여성이라는 장점도 있기에 자원해서 직접 배달도 다닌다. 또 그런 과정에서 업계 정보나 현장의 어려움을 들을 수도 있다.

 

김 대표가 20107월 인후알루미늄을 창업했을 때는 경리 1명에 전화 1, 1톤 차 한 대 만으로 시작했다. 거래처도 없었고아무데나 가서 일감 달라고 할 수도 없어 3개월만 해보고 접으려 했었다. 거래처는 회사를 상대로 일을 주지 아무리 능력있어도 그 개인을 보고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빈 사무실을 지키던 2개월만에 알고 지내던 거래처가 같은 납품가라면 김 대표와 거래하겠다고 하여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원하는 납품가에 공급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서 5개월만에 거래처를 10개사로 늘려 나갔다. 또 거래처는 새로운 거래처를 소개해줬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대박이 한 건 터졌다. 월 매출액 7~8천만원이나 되는 거래 건이 연결된 것이다. 이때부터 어디서 부르던 달려가서 애로점을 듣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줬다. ()알루멕스에서 10년동안 전 공정에 걸쳐 익힌 노하우가 있었기에대안을 찾는 것은 쉬웠다. 그렇게 해서 2분기(6개월) 매출실적

3억원에 이르렀다.

 

2011년 년 매출액은 129천만원. 2012년은 20억원을 기록해 그야말로 수직상승세를 나타냈고 2013년은 매출액 35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불황이라고 모두 울상이지만 인후알루미늄은 주문량이 밀려 설날 전에도 일주일째 밤 11시안에직원들이 퇴근을 못한채 풀가동해야 했다.

 

2010년 창업했을 때는 공장도 없이 탄현면 낙하리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판매에만 주력했으나 2012 8월에 이르러 임대공장에 기계를 들여오고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김 대표는 2012 10월 사무실을 공장 옆 현재 위치로 이전했으니 지금까지 2년여의 매출액은 공장도 없이 이루어 낸 실적인 것이다.

 

김 대표는 금촌초교-파주여중-파주여상을 졸업한 토박이로 고교시절에는 학생회장

을 지냈다. 1994년 파주여상 졸업 후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신화 비서실에서 5년간 일했는데 여기서 어른 모시는 자세를 배웠다고 한다. 1998 2월 퇴사 후 파주지역 건설회사에서 3년간 컴퓨터 부서에서 기성을 내주는 일을 했다. 그리고 2000 5 ()알루멕스에 경리사원으로 입사했다. 직원이 모두 3명이었는데 그 회사도 처음에는 ()인후알루미늄처럼 공장없이 출발했다.

 

경리여직원이 경리도 보면서 손이 모자라면 하루에 알루미늄 원자재 10톤을 나르는 일을 3년동안 했다.

김 대표보다 몇 살 더 많은 사장의 사촌동생이 운전기사 및 영업을 맡았는데, 사장은 “진선이 네가 나가봐라”고 했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입사 6개월 후에는 CAD도 독학으로 배웠고 업체에 가면 먼저 불량 건을 확인하고 해결방안 및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했다. 운전을 배우고부터는 사장을 대신해 대외활동까지 했고 귀사 후에는 사장과 상의해서 해결책을 모색했다. 모르는 것은 밤을 세워서라도 공부했고 일이 막히면 현장에 가서 다시 생각하며 터득했다.

 

()알루멕스는 2005 10월 공장을 마련하고부터 31살이었던 김 대표에게 관리과장자리를 주었다. 당시 직원은 모두 10명이었고 김 대표 위로는 공장장(차장) 및 사장 뿐이었다. 김 대표는 관리과장으로 사무실에서 경리, 영업, 행정업무 일체를 맡아서 혼자 처리했다. 단 오후에는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영업도 뛰었다. 그리고 과장이 된지 1년만에 영업차장이 됐고 퇴사 직전에는 영업부장으로 있었다.

 

김 대표는 7남매 중 6번째로 3살 때 부친이 사망해서 오빠, 언니가 생계비를 보태는 가정에서 자랐다. 김 대표가 직장에 다니고부터는 손 아래 남동생을 지원

해 상명대 경영학과를 마칠 수 있게 했다. 현재 ()인후알루미늄 차장으로 있는 남동생은 하이닉스전자 품질관리팀에서 2~3년 근무했었는데김 대표가 불러 용차를 맡기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상여금 2%이상주기로 직원들에게 선언했는데 그러면 차장급은 상여금만 3~4백만원이 된다고 한다. 연말에는 면사무소에 20킬로짜리 쌀 10포대를 기부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경영에 있어서 사람 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램이 있다면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마이홈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직원들이 몸 다치지 않고 열심히 일해 상여금 두둑이 챙겨가게 하는 게 사는 목적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직원이 입사하면 반드시 파상풍 주사를 맞히고, 운전자는 운전자보험, 상해보험을 들게 하고, 직원들에게 화재보험도 들어줬다.

 

JC 2011년에 가입했다. 회사가 상승무드를 타고 있고 파주젊은이들로 구성된 청년단체에 가입해 지역사회를 위해 함께 봉사하고 교류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상담센터를 홍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탈선했거나 방황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단지를 배포하며 계몽하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평화누리공원에서 1년에 한번씩 장애인들과 함께 하며 놀아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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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admin2014-07-07 02:13:24

    직원이 가족이고 자산이라는걸 정말 잘 알고있는 (주)연후알루미늄 김진선 대표님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항상 몸건강 잘챙기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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